SCENE-0의 유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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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0의 유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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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박.
     
    당신은 눈을 뜹니다.
     
    시야에 범람하는 것은 지독하도록 푸른 하늘,
     
    그리고 탁 트인 일직선의 도로입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대교에서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펜스.
     
    옆의 풍경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
     
    여기는, 차 안인가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면..
     
    블루아가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는 나직하게 묻네요.
     
    블루아 애쉬필드:일어났어?
     
    에반 메이슨:(눈 끔뻑이다가.) ... 응. 우리, 어디 가고 있었지?
     
    블루아 애쉬필드:가야 하는 곳으로.
    그 정도만 알고 있어도 돼. 어렵지 않잖아?
     
    에반 메이슨:... 어려운데. (끙.)
     
    GM:원한다면 주변을 조금 살펴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반 메이슨:(어차피 묻는다고 다 답해줄 사람도 아니고. ... 한숨과 함께 얼굴 쓸어내리며 주변 둘러본다.)
     
    예상대로.. 당신은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있습니다.
     
    차는... 모르는 차네요.
     
    적어도 당신이나 블루아의 차는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는 제법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전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이 녀석, 운전 못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백미러에 귀여운 시계 키링이 걸려 있어요.
     
    차 내부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차량용 방향제를 꽂은 것인지 묘하게 라벤더 향이 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에반 메이슨:(손 뻗어서 키링 살펴본다. ... 귀엽네. ...)
     
    작고 평범한 키링입니다.
     
    시간은 00시 01분을 가리키고 있네요.
     
    에반 메이슨:... (놔주고는 창밖으로 고개 돌린다.)
     
    자동차 라디오에선 이름 모를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가사도 모르겠고, 들어본 적도 없어요.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려본다면... 아무리 돌려도 다른 음악은 나오지 않습니다.
     
    채널은 한 곳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 DREA.M MHz ]
     
    ......
     
    자동차 앞 유리로 보이는 풍경은 맑기만 합니다.
     
    도로는 표지판 하나 세워진 것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끝없이,
     
    끝없이...
     
    ……
     
    ... 문득 알아챕니다.
     
    이 도로는 말 그대로,
     
    끝이 없습니다.
     
    에반 메이슨: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GM:이성치 감소 없습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언제 보든 같습니다.
     
    계속 똑같은 풍경만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걸까요?
     
    에반 메이슨:... 블루아, 우리 진짜 어디 가? (어쩌다 이 차를 타게 됐더라 ... 떠올려보려 애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내 대답은 같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수십 번 묻는다 한들 에반 메이슨이라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에반 메이슨:...... 나 개명했어.
     
    블루아 애쉬필드:아하.
    흥미롭네. 뭘로? (고개 돌려서 빤히.. 바라본다.)
     
    에반 메이슨:(빤히 보다가.) 블루아 메이슨으로.
     
    블루아 애쉬필드:(눈 깜박..) 글쎄..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에반 메이슨:(다시 턱 괴고 창밖 보더니.) 농담인데 좀 웃어주면 덧나?
     
    블루아 애쉬필드:여기서 뭘 더 어떻게 웃으라고 이러시나.. 아무리 봐도 미소가 필요한 건 네 쪽 같은데. (한 손 핸들에서 떼어내고는 입꼬리 톡톡.)
     
    에반 메이슨:...... 미소 말고, ( 굳이 고개 돌리지 않아도 네 행동이 뻔히 그려졌다.) 나는 ... 날 위해 농담해주는 친구가 없어서.
     
    블루아 애쉬필드:그래?
    학창 시절 적에는 친구가 제법 되었던 것 같은데, 에반 메이슨. 그 많던 교우관계는 다 어찌 하셨나...
     
    에반 메이슨:친구는 서로 닮는다더라. ... 옆의 누구를 닮아버리기라도 했나 보지.
     
    블루아 애쉬필드:닮는다, 라....
    확신할 수 있어?
     
    그러다 돌연,
     
    블루아가 얌전히 붙들고 있던 핸들을 확 꺾습니다.
     
    차는 오른쪽으로 꺾여 펜스를 들이받습니다.
     
    들이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부수고,
     
    대교의 안전 펜스를 넘어,
     
    -추락합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온몸의 장기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동차 채로 허공을 비행하는 블루아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서…
     
    ……
     
    이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떨어집니다.
     
    —첨벙.
     
    차체는 대교 아래의 강물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가고,
     
    내부는 일순 푸른 어둠에 잠깁니다.
     
    그리고 블루아는 당신을 돌아봅니다.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웃으며, 너무나 부드럽게 묻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이런 것도 이젠, 나름.. 즐겁지 않아?
     
    ..실없는 소리입니다.
     
    에반 메이슨:... 야, (얼굴이 대놓고 구겨진다.) 너 미쳤어?
     
    블루아 애쉬필드:(차체에 물이 새어들어오기 시작한다.)
    글쎄.. 삼월 토끼의 다과회를 알아, 에반?
     
    에반 메이슨:갑자기 앨리스 이야기야? (네 쪽으로 손 뻗는다. 닿나? 아니, 닿으면 뭐 어쩔건데. ...)
     
    블루아 애쉬필드:미쳤다, 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하지 않느냐는 거야. (잡힌다. 밀쳐내려는 의사 또한 그닥 보이지 않는다.)
    너는 앨리스보다는 도마우스에 가깝지 않으려나 싶지만.
     
    .......
     
    당신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채 행동하기도 전에..
     
    그러니까, 암전이 옵니다.
     
    정신이 추락합니다.
     
    .
     
    .
     
    .
     
    GM:에반, 1d4 굴려주세요.
     
    에반 메이슨:...... 3
     
    —깜박.
     
    당신은 눈을 뜹니다.
     
    뺨을 간질이는 무언가가 당신의 잠을 깨운 듯합니다.
     
    당신이 잠이 든 동안 덮고 있었던 것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베고 있었던 것은 어딘가의 들판입니다.
     
    ..언제 잠이 들었던 것일까요.
     
    몸을 일으켜서 앉으면,
     
    당신 바로 옆에서 블루아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고요히 웃으며 묻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일어났어?
     
    에반 메이슨:... 어, 일어났는데. (그대로 네 한쪽 볼 붙잡아 늘린다. ...)
     
    블루아 애쉬필드:(늘어난다. 딱히 이렇다 할 촉감이나 반응이 있지도 않았겠지만..) 기상 인사가 너무 격하신데..
     
    에반 메이슨:얄미워서. (확 늘리고 나서야 놔준다.) ... 이상한 꿈을 꿔서 확인도 할 겸.
     
    블루아 애쉬필드:무슨 꿈을 꿨는데?
     
    에반 메이슨:... 블루아 메이슨으로 개명하는 꿈.
     
    블루아 애쉬필드:(조금 웃더니) 꿈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에반 메이슨:내가 지금 살아있으니까? (네 말에 무언가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제 뺨 꼬집어본다.)
     
    블루아 애쉬필드:살아있다.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뺨을 꼬집어보면..
     
    ..아야!
     
    따끔합니다.
     
    에반 메이슨:(얼얼. 벅벅벅벅 쓰다듬는다.) ... 그런데 여기 어디야?
     
    블루아 애쉬필드:있어야 할 곳.
     
    .......
     
    너른 들판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날씨는 조금 쌀쌀하네요.
     
    그렇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감상이 듭니다.
     
    달리 깔고 있었던 것은 없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다 잠들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저 멀리서 양 떼가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 주변에서 누군가 양을 치는 걸까요.
     
    ..그게 당신에게 무어 중요한 말이겠냐만은.
     
    시간은 저녁으로 보입니다.
     
    하늘은 온전히 붉게 물들어 있고, 해는 가물가물하게 일렁이고 있습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나 민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에반 메이슨:... 내가? (노을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니면, 네가?
     
    블루아 애쉬필드:네가 있어야 할 곳이라면, 나 또한 있겠지.
    같이 있었잖아, 우리?
     
    에반 메이슨:(기억 더듬는다. 그러나 여전히 잡히는 것은 없다.) ...... 그랬나? 왜 기억이 안 나지.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블루아 애쉬필드:(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직인가.. 뭐, 아무래도 좋아.
    잠깐 산책이나 할까? 꽤 조용하고 좋잖아, 여기.
     
    에반 메이슨:... ... 너 방금 되게 악당처럼 말했어.
    (네 말에 곧 자리 털고 일어난다.) 그럴까?
     
    블루아 애쉬필드:한두 번인가, 어디. (웃음..)
     
    에반 메이슨:...... 지금도, 악당처럼 웃고. (손 내민다.) 산책하자며.
     
    블루아 애쉬필드:(손 내밀어진 것 보다가 눈꼬리 접어보인다.) 여전히 동심은 남아계신 것 같고.
     
    맞잡으면..
     
    낯설지는 않은 체온이 와닿습니다.
     
    평화로워요.
     
    에반 메이슨:(스치는 바람이 평화롭다. 적당히 따스하고, 적당히 서늘하다.) 그래. 남아있나봐. 하늘에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네.
     
    블루아 애쉬필드:뭐.. 이쪽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고.
    이야기가 아주 어려워지진 않을 것 같달까.. (느긋한 어투다.)
     
    ......
     
    약간의 간극을 두고, 그는 입을 엽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옛날에- 세 자매가 있었어. 그 아이들은 우물 아래 살았지.
    당밀을 먹고 살았어. 그래서 몹시 아팠고.
    그건 당밀 우물이었거든.. (조금 웃더니)
    하여튼, 세 자매는 그리기를 배우고 있었어. 그리는 건 당연히 당밀이었지.
     
    에반 메이슨:... 네가 동화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묻듯 눈짓한다.)
     
    블루아 애쉬필드:그러다 그들은, 디귿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을 그리게 되었어. 덫, 달, 단상, 다량 같은 것들을 말이야.
    아, 참고로 다량은 많다는 뜻의 다량말이야.
     
    ......
     
    종잡을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때 문득, 블루아가 하늘을 가리킵니다.
     
    에반 메이슨:......
     
    하늘에 시선을 두면...
     
    노을은 아직도 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가물가물한 해가 오히려 아주 천천히,
     
    에반 메이슨: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이성치 감소 없습니다.
     
    ..블루아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블루아 애쉬필드:'다량을 그리는 걸 본 적이 있어?'
    그러자.. 한참 헷갈려 하던 앨리스는 '이제야 내게 물어도 보는 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하고 말을 시작했지.
    그러자 그 곁에 있던 모자장수 왈, '그럼 말하지 마.'
    앨리스는 결국 그 무례함에 기가 막혀 일어나 버렸고-
    그 사이, 이야기를 하던 도마우스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어.
     
    ......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지는 광경입니다.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땅이 급격하게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블루아는 담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시간이, 이제 얼마 없어..
     
    의미 모를 말만 중얼거리다..
     
    그는 당신의 눈을 덮어버립니다.
     
    에반 메이슨:... 너, 뭐해?
     
    블루아 애쉬필드:아무것도.
    봐- 난 내내 네 옆에 있었잖아, 그렇지?
     
    에반 메이슨:내가 그걸 믿겠어? ...... 그래, 그랬었지.
     
    블루아 애쉬필드:하고 싶은 말은?
     
    에반 메이슨: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네 손 아래서 눈을 찡그렸고.) 평소보다 더 이상해.
     
    블루아 애쉬필드:에반 메이슨. 나는 원래 이상했어.
     
    에반 메이슨:...... 그러니까, 평소보다 더 이상하다고. (중얼거린다.)
     
    ..캄캄한 시야 너머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잘 생각해 봐. 답은 네게 있어.
     
    ......
     
    저 멀리서 양 떼의 울음 대신에, 짐승의 비명이 들립니다.
     
    암전이 옵니다.
     
    정신이 추락합니다.
     
    .
     
    .
     
    .
     
    GM:에반, 1d4 굴려주세요.
     
    에반 메이슨:4
     
    GM:씬을 조정합니다.
     
    —깜박.
     
    당신은 눈을 뜹니다.
     
    당신이 누운 지면이 물소리와 함께 울렁입니다.
     
    …아니, 지면이 맞나요?
     
    아닙니다.
     
    여기는... 배 위군요.
     
    조촐한 작은 배 위에 몸을 싣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옆에는 블루아가 앉아 있습니다.
     
    하얀 돛을 펼치던 그는 당신을 돌아보며 묻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일어났어?
     
    에반 메이슨:어. 일어났어. (아직 멍한 눈을 비비며 몸 일으켜 앉았다.)
     
    배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돛과 키도 있는 것이, 배의 기능을 제대로 하긴 하나 보네요.
     
    블루아는 능숙한 듯 그것들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것을 할 줄 알았던가요…
     
    높은 확률로 아니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에반 메이슨:... 너, 배도 운전할 줄 알았어?
     
    블루아 애쉬필드:가끔은 운전해야 하는 날이 오기도 하는 법이지.
     
    에반 메이슨:네가 말하면 묘하게 설득력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블루아 아일란 애쉬필드.
     
    블루아 애쉬필드:비판적 사고능력이 절실해, 에반 메이슨. (농조다.)
    궁금한 건 더 없고?
     
    에반 메이슨:대학 공부 한 뒤로는 잘해. (아닌가. 쓰게 얼굴을 쓸어내리고. 아마도,) ... 잘했어.
    지금 이거, 꿈이야?
     
    블루아 애쉬필드:그래, 맞아.
    네가 잘했건- 잘하건. 그건 현실이겠고.
     
    에반 메이슨:나, (입안이 말랐다.) ... 도망친 거야?
     
    블루아 애쉬필드:(말없이 당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글쎄.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종이 한 장, 초침 한 칸의 차이야. (손바닥을 뒤집는 시늉을 하더니) 언제든 뒤집힐 수 있어.
     
    에반 메이슨:...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네게 시선 빗겨 수면을 바라본다.) 너도 내 꿈의 일부야?
     
    블루아 애쉬필드:(제 왼손 검지손가락을 들고는) 하나. 현실과 꿈을 가르는 건 무엇이지? 그것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이번에는 중지도 들어올린다.) 둘. 지금은, 그렇다고 해 두지. 일이 꼬였거든. 내가 말할 수 있는 답은 하나야. 네가 있다면, 나 또한 있다는 것.
     
    에반 메이슨:(시선만 힐긋 네 손끝을 향했다.) 같이 있는 게 너라서 다행이야.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긴 하겠지만, ... 넌 믿음직스러운 친구니까.
    (반짝이는 수면 바라보다 눈 감아버리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이게 현실이든, 꿈이든,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니까.
     
    주변은 완전한 밤입니다.
     
    별들이 총총히 떠 있어 빛나는 별 사이사이를 손가락으로 그어볼 만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우리는 항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활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크기입니다. 이 배는.
     
    배의 모든 것들은 낡은 감이 없이 전부 새것입니다.
     
    삭거나 닳은 곳 없이 완벽한 것이,
     
    이질감이 듭니다.
     
    배 밖으로 몸을 빼어 바닷물을 살피면.. 밤바다라 그런지 칠흑 같습니다.
     
    ……
     
    ……
     
    ...저것은 정말 물이 맞나요?
     
    아니, 아닙니다.
     
    검은 점액질의... 무언가.
     
    우리는.. 정말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맞나요?
     
    에반 메이슨: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GM:이성치 감소 없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평화라. (짤막히 답하고는 돛대에 몸을 기댄다.) 실은 바라는 게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에반 메이슨:...... 그러게. 내가 욕심이 많다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검은 바닷물을 보고 있다.)
     
    블루아 애쉬필드:(여전히 상대에게 시선이 머무른 채다.) 억울했나? 아니면, 복수하고 싶으셨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끊어진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 문장 완성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니라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에반 메이슨:억울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 아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복수하고 싶진 않았어, 아마도. (뒤엉킨 감정들을 되짚으면 전부 존재하나 존재하지 못 해서. 잔류한 감정들은 모두 자신의 것임에도 말로 토해낼 수 있는 것이 몇 없었다.) 그냥 나아진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없어도 평화로운 세상, 그런 거, 낮은 목소리가 덧붙는다.)
     
    블루아 애쉬필드:상실은 필연적으로 들러붙어야 할 곳을 찾지. 네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버리면- 전혀 다른 형태로 변모해서 다른 이 위에 덮어 씌워지고.
    본인도 본인의 감정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야. 결국 남는 건 불쾌, 내지 부정이고.. (시선 들어 하늘에 잠시 눈이 멎는다.) 결국 '나'는 '나'로부터 비롯한 감정과 싸우게 되지. 아이러니야. (스스로의 싸움이라는 뜻이 되겠다.)
    (이어진 말에는 간극이 이어진다.) 너는 평화롭지 못하더라도, 세상이 평화롭다면 아무래도 좋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나?
     
    에반 메이슨:그래서, 못 버텨낸 것 같아? (새카만 바닷물을 여전히 들여다본다. 누가 그랬는데, 밤바다는 위험하다더라.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 우울에 빠져버린다고. 끝내 그 우울에 익사한다고. 자신의 숨은 어디까지 막혀있는 건지.)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 그런데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결국 지고 만 건가? (그제야 바다에서 천천히 시선을 떼어낸다. 말과 달리,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돌아가기를 택하겠지. 벼랑 끝까지 내몰려 평화에 스스로를 내맡긴 지금을 봤음에도. 그래서 과거의 자신을 이해한다.) 응. 그랬어. ... 그럼 조금 나아질 것 같았어, 내가.
     
    블루아 애쉬필드:그 답은 네게 있지 않나? (느릿이 팔짱을 낀다.) 말이야 해줄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네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바닷물 아닌 심연에 당신의 모습이 비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묻자. 당신의 우울은, 정말 이곳에 묻히기에 타당한가?)
    당장 떠올릴 필요는 없어.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도.) 나는 어디까지나 네 장면에 미장센을 더해줄 뿐.. 구성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결국 오롯이 네 몫이니. (이어 한참이나 이어지는 말을 들었을 적에, 그리고 저를 돌아봤을 적의 당신을 마주했을 때의 감상은 단 한 문장 뿐이었다.)
    이기적이네, 에반 메이슨.
     
    .......
     
    그리고, 갑자기 배가 크게 요동칩니다.
     
    파도가 높게 일더니-
     
    선박 안쪽까지 물이 밀고 들어옵니다.
     
    이런 모든 기이한 순간에도 블루아는 가만히.. 웃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를 가리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저기 봐, 에반.. 높은 파도가 오고 있어.
    저 정도라면- 우리가 무얼 하든 소용 없겠지.
     
    그리고는,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어깨를 가볍게 주먹으로 통 치더니–
     
    등을 쓸어주며...
     
    …속삭입니다.
     
    블루아 애쉬필드:그렇지만.. 괜찮아.
     
    …무엇이?
     
    더 묻기도 전에, 배를 완전히 덮고도 남을 만한 큰 파도가 찾아옵니다.
     
    시야는 완전히 검어지고,
     
    당신의 몸이 강한 물살에 밀쳐져,
     
    등 위에 올라왔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암전이 옵니다.
     
    정신이 추락합니다.
     
    GM:씬을 조정합니다.
     
    —깜박.
     
    당신은 눈을 뜹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테이블의 감촉.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듭니다.
     
    작은 원형 테이블에 조그만 케이크가 하나, 커피가 둘.
     
    하나는 당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의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네, 블루아입니다.
     
    블루아는 당신 맞은 편에 앉아 홍차에 각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휘젓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일어났어?
     
    에반 메이슨:응. 일어났어. (조금은 익숙해진 태도로 주변을 둘러본다. 커피잔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어딘가... 실내인 것 같습니다.
     
    카페보다는 응접실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야, 처음 보는 곳이니까 말이죠.
     
    창밖으로는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
     
    봄바람이 나뭇잎들을 한들한들 흔듭니다.
     
    당신 앞에 놓여있는 것은, 케이크 하나와 홍차입니다.
     
    케이크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입니다.
     
    홍차는 수색이 맑고 진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별다른 향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금 미지근한 것이, 따른 지 시간이 조금 지난 듯합니다.
     
    블루아의 앞에도 같은 잔이 놓여 있습니다.
     
    에반 메이슨:이거, 마셔도 되는 거야?
     
    블루아 애쉬필드:어떤 답을 원해? (저는 보란듯 한 모금을 넘긴다.)
     
    에반 메이슨:(뚱한 얼굴.) 나도 홍차 잘 마셔.
     
    블루아 애쉬필드:알아. (찻잔 너머로 말린 입꼬리가 보인다.) 네 차에는 독이 있고.
    마시고 아니고는 네 자유야. 어차피 어떻게 되는지는, 이제 너도 감을 잡았을 텐데.
     
    에반 메이슨:...... 네 차에는 없어? (괜스레 말 돌린다.)
     
    블루아 애쉬필드:글쎄. 그게 중요한가? (느긋한 투다.)
    배고프면 케이크도 한 입 먹고. 뭘 좋아하는지 기억이 안 나서 제일 무난한 걸로 뒀는데.
     
    에반 메이슨:그래? 감동받을 뻔 했는데. (딸기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케이크를 입에 넣으면..
     
    달달한 딸기맛이 입안을 감쌉니다.
     
    잘 익어 맛있네요!
     
    에반 메이슨:(찻잔 테두리를 손끝으로 따라그린다. 조금 전의 꿈에서 말이야, 꿈이 아니라면 ... 조금 전의 장면에서 말이야, 파도가 밀려올 때 가장 안도한 건 네가 죽지 않는다는 거였어. 네 말대로라면, 이곳의 일이 네겐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거. 똑똑한 친구를 뒀다니까. 이기적이네, 에반 메이슨.) ... 고마워. ( 찻잔을 입가에 가져간다. 이미 미지근한 찻물을 마셨다. )
     
    블루아 애쉬필드:죽지 않는다. (웃는 낯 그대로 당신이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이건 '네' 꿈이야, 에반. 네가 날 죽이면- 난 그대로 끝이지. (제 앞에 놓인 케이크의 맛을 평하듯 한없이 단조로운 투다.)
    뭐.. 우선은- 천만에, 라고 해 둘까. (그 행동 따라 저도 다시금 찻잔 손잡이를 들었다.) 또 하고 싶은 말은?
     
    에반 메이슨:(푸른 눈이 너를 한참 담는다. 고저없는 네 목소리에도 자꾸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것은 천성이었다. 그냥 너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너를, 블루아 애쉬필드를, 이건 자신이 아니라 '네' 꿈의 블루아라고 말해줄.) 다시 연락할 테니까, 답장해.
     
    블루아 애쉬필드:이것저것 많이 배웠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지. 제법이야. (가늘게 뜨이는 눈이 즐거움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뭐, 나쁘지 않았다만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신은 테이블 위로 머리를 처박게 됩니다.
     
    극렬한 통증이 당신의 폐부를 헤집습니다.
     
    가슴께가 불타는 듯 저리고 따갑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요.
     
    아, 곧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그리고- 가볍게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맞은편에 앉은 블루아는, 미동 없이 그 특유의 낯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마지막 힌트를 줄게, 에반. 연락을 하고 싶다면- 뭐부터 해야 할까.
    네 의지야. 단순하지.. 안 그래?
     
    작은 중얼거림 끝에...
     
    에반 메이슨:윽, (숨이 막혔다. 손끝이 고통에 테이블을 긁어댄다. 이전의 모든 장면들과 다르게,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꿈에서 깨야겠지. 현실로 돌아갈 거야. ... 누군가를 잃은 세계에서 나는 살아갈 거야. (흐려지는 시야에 이를 악문다.) 장난은 그만 쳐!
     
    .......
     
    절박함과 완벽히 대비를 이룬-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그 소리가 싫을 수만은 없었던 이유는..
     
    .
     
    .
     
    .
     
    .......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을까요.
     
    언제부터 그는 당신과 함께 해주었을까요.
     
    몇 번의 세계를 반복했을까요.
     
    여느 꿈이 그러하듯 가늠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소용없을 고민이죠.
     
    당신은, 결국 꿈에서 깨어나기를 택했습니다.
     
    오롯이 당신의 의지로 말입니다.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평화와 재난 속에서, 빠져나가기를 택한 것은 당신입니다.
     
    그러니, 눈꺼풀을 밀어 올려 보세요.
     
    어떤 실수로 인하여 이곳에 들어왔던-
     
    당신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안 돼요.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
     
    —깜박.
     
    당신은 눈을 뜹니다.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
     
    익숙함과 동시에 생경하기 짝이 없습니다.
     
    몸을 일으켜보면..
     
    당신의 침대 곁에 기대어 잠이 든 누군가가 있습니다.
     
    ……
     
    블루아입니다.
     
    당신이 기척을 내면, 그도 곧 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그러고는 여상히도 웃으며..
     
    물어옵니다.
     
    블루아 애쉬필드:…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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